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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및 양성평등 인식 향상 공모전 "다양성을 존중 받을 권리"] 우수상 작품
작성자 : 연수빈
간호학과 노승연 님의 우수상 작품입니다.

[차이와 차별에 대해 배우는 중입니다.]

간호학과 노승연

어렸을 적에 설날이나 큰 명절 때가 되면 집안에서 제일 큰 집인 큰아빠 댁에 가서 명절을 보냈었다. 명절에는 맛있는 음식들과 친척들이 삼삼오오 모여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남녀 공학 중학교를 졸업하고 여자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후부터 집안의 명절을 보내는 풍습을 의심하게 되었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사회·정치·법률상의 권리 확장을 주장하는 주의. 남녀 동권 주의라는 뜻이다. 지금 현대에 들어서 페미니즘이란 뜻이 조금 변질되었을 수도 있지만 처음 이론이 등장했을 때는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 생각 해 보지도 않았으니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듣고부터 나의 양성평등의 가치관과 생각이 시작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나는 두 개의 대학교를 다녔다. 하나는 서울에 있는 곳이었고 다른 한 곳은 바로 충청대학교이다. 고3의 입시를 마치고 성적에 맞춰 운이 좋게 서울권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과제가 있다면 다른 학교에 가서 청강을 듣는 것이었다. 동기들과 이화여자대학교에 가서 인권 사상에 관련된 청강을 듣게 되었다. 그 때는 시간도 아침시간이고 듣는 학생 수도 100명이 넘어서 이거라면 다른 학교에서 온 것이 티가 안 날 것 같아 선택하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강의를 선택한 것 같다. 청강을 다 듣고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보며 손을 씻고 있었는데 거울 밑에 작게 작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문구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화장하지 않은 그대 모습도 참 예뻐요.’ 라고 적혀 있던 문구는 여대라서 그런가 참 따뜻한 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 중에 양성 평등과 정치 등 사회에 대해 토론하기 좋아하고 의견을 잘 말하는 예진이라는 친구가 있다. 예진이에게 청강을 다녀왔던 얘기와 화장실에서 봤던 문구를 보며 여대라서 그런지 말도 참 따뜻했다고 후기를 말하자 예진이는 내게 그 문구가 페미니즘 문구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페미니즘 동아리가 있는데 학교 곳곳에 그 문구를 붙여 화장하지 않은 그냥 나 자체의 모습, 사회의 미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나는 생활 곳곳에 이렇게 양성 평등에 대해 녹여 있는 줄 몰랐고 인식하지 못 했던 것 같다.
기숙사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과 예전부터 간호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향으로 지원한 것이 붙었기에 학과에 상관하지 않고 갔었던 탓일까 전공에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고 내가 이걸 4년 동안 배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수능을 보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 충청 대학교 간호학과에 와서 전공을 배우면서 인체가 신기하고 새로 알게 되는 것이 참 즐거웠다. 나의 작은 손길이 다른 사람에게는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전공은 다행히 나에게 잘 맞았다. 간호학과에 입학하니 코로나가 터져서 1학년은 학교에 거의 가지 않았고 2학년 때부터 제대로 다니기 시작하였다. 간호학과 특성상 남자 학생이 굉장히 적은데 2학년 때 우리반 남학생은 4명 정도에 불과했다. 간호학과는 자율실습이라고 해서 현장에서 사용되는 술기들에 대해서 다시 복습해 보는 시간이 있는데 그 날은 모발간호로 중환자실에서 누워계시는 분들에게 머리를 감겨드리는 것에 대해 복습하는 날이었다. 간의 물통에 물을 담아와 미용실에 있는 머리를 감겨주는 세면대에 누워 직접 누군가는 머리를 감아야 했었고 그걸 학생들 중에서 골라야 했다. 나는 재미있어 보였고 누구보다 실습 활동에 있어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다고 했지만 친구들은 내가 머리가 길기도 하고 누워있는 얼굴도 다 보여줘야 하니까 부끄럽지 않느냐 하며 남학생 2명이 돌아가며 모발간호를 받게 되었다. 그때는 조금 덜 번거로워지니까 안 해도 되겠다 싶었지만 돌아서 생각해 보면 그 남학생들 2명은 단지 머리가 짧고 여학생들이 하기엔 부끄러우니까 당연시 머리를 감게 되었던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성인 된 후 큰 집에 명절을 보내러 갔을 때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큰 엄마와 고모, 엄마는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음식을 하고 상을 나르는 반면 큰아빠, 고모부, 우리 아빠도 방에 들어가서 쉬거나 아니면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 모습. 또 밥을 먹을 때는 상을 두 개 펴서 한 개는 남자 어른들과 남자 친척동생과 우리 오빠가 먹으며 작은 상에는 나와 언니들이 밥을 먹는 것이었다. 심지어 큰 엄마와 엄마는 밥을 다 차리고 우리가 밥을 다 먹고 나오면 드셨다. 생각해 보면 애기 때 아빠 옆에서 먹겠다면서 큰 상에 가서 앉자 아빠가 곤란해 하며 웃던 것이 기억에 난다. 이게 어떻게 당연시 되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하나가 눈에 들어오자 다른 잘 못 된 것들도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자기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의 이름은 일미인데 자꾸 우리 언니 이름 지원이로 이름이 불린다. 지원이 엄마도 아니라 그냥 지원아 일로 와봐라 하며 집안에서 불린다. 큰집에 가면 고모도 안순이가 아니라 노아야 고모도 순옥이가 아닌 동찬아 이렇게 불린다. 당연했던 명절이 불편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현대 사회에서는 페미니즘하면 부정적인 시선이 먼저 다가온다. 여성을 우월하게 올리고 남성을 아래에 두면서 누가 먼저이고 누가 우월한지를 따지는 그런 사상이 되었다. 하지만 본질의 의미는 누가 위에 있고 누가 아래에 있는지 정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동등함을 가지자라는 뜻을 담은 주의이다. 나는 살아가면서 남성이나 여성 각자의 성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남성은 군대라던가 여성은 임신과 출산이 이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유함을 인정해 주고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인지를 가치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양성평등에 다가갈 수 있는 첫 걸음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양성이 평등하지 못하거나 성차이가 아니라 성차별이라 느껴지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이런 것들에 바른 시선으로 나만의 기준과 가치관을 지키며 주위 의견에 휩쓸리지 않겠다 마음먹으며 글을 마치고 싶다.
양성평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없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삶 속에 얼마나 많은 당연시되는 차별이 있었는지 이런 것들을 사소하게 넘기지 말고 나만이라도 중심을 지켜야 겠다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양성평등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서로를 존중하며 화합하며 나아가는 세상이 찾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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