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강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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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목표

월강기념사업회는 학교법인 충청학원 충청대학의 설립자 겸 이사장이셨던 고 월강 오범수 선생님의 투철한 애국애족과 숭고한 창학이념을 길이 보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발전과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여 '98년 4월'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월강기념사업회는 선생님의 공적조사와 유물소집, 추모행사 그리고 선생님의 숭고한 교육이념을 기리는 각종 학술.봉사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 저명인사를 초빙하여 고문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월강기념사업회의 목적이 성대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준비중에 있으며, 기념사업회가 정식으로 발족하기 전까지는 위원장을 중심으로 운영 위원회에서 추진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충청학원 설립자(고) 월강 오범수 선생을 기리며

선생님께서는 1919년 9월 27일 청원군 현도면 우록리에서 고려조의 명문인 보성 오씨 부위공의 16대 손으로 출생하셨습니다. 소년시절을 향리에서 보낸후 일찍이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경의 창평중학을 거쳐 일본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귀국후 군정청 교통부 해사국에서 근무하면서 인천항 건설등 토목건설 분야에서 종사하다 당시 해군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의 권유로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해사 특3기로 졸업하셨습니다. 졸업 후 해군시설 부장, 군항건설 단장등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 해군사에 큰 공훈을 남기셨습니다. 1954년 예편후 대한건설공사를 창립하여 대표이사로 주요 항만건설에 전력하다 1958년 정계에 투신하여 그해 청원 갑구에서 제4대 국회의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었으며 정치가로서 남다른 투지와 역량을 발휘하여 우리나라 정치사에 길이 남을 많은 공적을 남기셨습니다. 그 예로 1960년 이승만 대통령께 직언으로 3.15 부정선거를 만류하신 일이나 4.19혁명후 민주당 집권시 주위 유혹을 물리치시고 자유당을 고집하여 충북에서 초대 참의원으로 당당히 당선된 집념, 또 국방의원시의 눈부신 활약과 소급입법 반대사건 그리고 1961년 국정반대 투쟁위원회의 사무총장직을 맡아 군정에 대항하여 투쟁한 일 등 선생님께서 쌓으신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후 정계 일선에서 물러나 을지회관을 건립하시고 한국통일촉진회 부회장, 대한생산관리협회 회장, 동서울라이온스클럽 회장, 국회의원동우회 상임부회장, 국제라이온스협회 309A지구 부총재등 많은 직책을 맡아 사회봉사활동에 전력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올바른 교육만이 국가발전과 민족번영의 원동력이라는 투철한 교육관을 지니고 계셨고 평소에도 인재양성에 많은 관심과 정열로 학교설립을 구상하시다가 1980년 학교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현 충청대학 교지를 선정매입하고 출연금 22억여원을 기본재산으로 1981년 6월 29일에 학교법인 충청학원을 설립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후 많은 노력과 강인한 추진력을 발휘하시어 1982년 12월 대학설립인가를 받고 1983년 3월 16일 역사적인 충청대학의 전신인 충청실업전문대학의 출범을 이루셨습니다. 대학 출범 후 선생님께서는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불철주야 학교발전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하여 충청대학을 오늘날의 중부권 제일의 명문 사학으로 키우셨습니다.

저희 뿐 아니라 선생님을 흠모하는 많은 분들이 선생님의 탁월한 지도력과 따스한 손길을 오래동안 바랬었건만 애통스럽게도 1997년 4월 29일 서거하셨습니다.